의미 없는 삶을 견디기 힘든 이유
사람은 단순히 생존하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삶의 이유를 찾고, 살아가는 의미를 느끼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예전엔 즐겁던 일상도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해야 할 일들이 지루하고 무거운 의무로 다가온다. 스스로 묻게 된다.
“이렇게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왜 이렇게 공허하지…?”
삶의 의미를 잃었다는 감정은 무기력과 허무로 이어지고, 때로는 깊은 우울의 문을 연다. 이 글에서는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심리적 이유와 철학적 배경을 분석하고, 어떻게 다시 삶의 방향성과 가치를 회복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의미 상실의 심리적 원인과 현대인의 허무감
현대인은 예전보다 더 많은 자유와 선택권을 가졌지만, 그만큼 더 큰 혼란 속에 살아간다. 사회는 성공, 돈, 명예, 효율 같은 외부 기준을 끊임없이 강조하며, 그 틀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압박을 준다. 하지만 그런 기준을 따라가도 마음속 허무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삶의 의미를 상실한 상태를 실존적 공허(existential vacuum)”라고 불렀다. 그는 “삶에서 왜 살아야 하는지를 잃은 사람들이 무기력, 중독, 충동성에 빠진다”고 경고했다.
또한, SNS 시대에 타인의 성공과 비교가 쉬워지면서 “나는 왜 저 사람처럼 의미 있는 삶을 살지 못하지?”라는 자책이 생기기 쉽다. 이런 심리 상태는 삶의 중심을 잃게 만든다.
철학에서 본 허무주의 – 니체, 카뮈, 프랭클
프리드리히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기존의 절대적 가치(종교, 도덕, 전통)가 붕괴된 세계에서 인간이 의미를 스스로 창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가치를 상실한 상태를 ‘허무주의(nihilism)’라고 불렀다.
니체는 허무를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응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허무를 견디는 자만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삶이 본질적으로 부조리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삶이 무의미하다고 해도, 살아야 할 이유는 있다”고 역설한다. 그는 시지프처럼 무의미한 돌을 밀어 올리는 삶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고 그 순간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참혹한 경험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잃지 않은 사람들을 통해 “의미는 어디서든 발견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은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만들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하며, 이를 ‘로고테라피(logotherapy)’로 발전시켰다.
삶의 의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삶의 의미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체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의미는 세 가지 방식으로 형성될 수 있다.
- 경험을 통한 의미: 사랑, 예술, 자연과의 교감 등
- 태도를 통한 의미: 고통, 실패, 상실을 받아들이는 자세
- 창조를 통한 의미: 나만의 프로젝트, 일, 창작 활동
의미를 만든다는 것은 삶을 해석하는 나만의 관점을 세운다는 뜻이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왜 이 일을 하는가’를 스스로 규정하는 사람은 무기력하지 않다.
허무를 극복하는 실천적 태도
- ‘무의미하다’는 감정과 싸우지 않기
허무는 억누를수록 커진다.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안에 있는 질문을 성찰해보자. “무엇이 내게 의미 없는 삶처럼 느껴지게 했는가?” - 작은 의미부터 찾기
크고 거창한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말자. 일상에서 누군가에게 친절하게 행동하는 일, 오늘 하루 글 한 줄을 쓰는 일도 의미가 될 수 있다. - 실존적 질문을 습관화하기
–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 나는 무엇에 기뻐하는가?
– 나는 어떤 삶을 원하고 있는가? -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기
의미는 타인이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남들이 정해준 길이 아닌, 나만의 방향성을 세워야 한다.
의미 있는 삶을 위한 자기이해의 힘
자기이해는 의미 회복의 출발점이다. 내가 진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할 때 생동감을 느끼는지를 파악할 때, 허무의 감정은 점차 자리를 잃는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의미를 느끼고, 또 어떤 사람은 조용한 공간에서 창작하며 의미를 느낀다. 자기이해가 깊어질수록, 삶은 타인의 잣대가 아닌 나만의 기준에 따라 의미를 다시 구성할 수 있게 된다.
삶의 방향성을 회복하기 위한 질문
- 나는 무엇을 할 때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몰입하는가?
- 나는 어떤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 나는 어떤 순간에 살아 있음을 느끼는가?
- 나는 지금의 삶에서 어떤 부분이 허무하게 느껴지는가?
- 그 허무를 넘어가기 위해 나는 어떤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만들어내는’ 기반이 된다.
마무리
나는 왜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는가?
그 이유는 외부의 기준에 휘둘리고,
나만의 삶의 방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허무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이다.
그러나 그 허무를 정직하게 마주할 때,
우리는 의미를 다시 창조할 수 있다.
삶의 의미는 스스로의 내면에서,
일상 속 작고 단단한 가치에서
천천히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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