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는가 – 자기 존중과 내면의 척도
내가 나를 판단할 때, 기준은 누구의 것인가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신을 판단한다.
“나는 괜찮은 사람일까?”
“이 정도면 잘한 걸까?”
“왜 나는 늘 부족하다고 느껴질까?”
이런 질문들은 일상적으로 떠오르지만, 정작 ‘그 판단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잘 살펴보지 않는다. 내가 나를 평가할 때 적용하는 잣대는 정말 나의 것일까, 아니면 타인과 사회로부터 주입된 기준일까?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단순한 자존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과 연결된다. 그리고 이 기준이 나의 내면에서 정립되지 않으면, 나는 외부의 조건과 시선에 휘둘리며 끊임없이 흔들리는 자아를 살게 된다.
이 글에서는 자기존중의 진짜 의미와, 내가 나를 평가하는 기준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그것을 스스로 다시 만들어갈 수 있는지를 철학적 관점에서 탐구해본다.
평가의 기준은 어디에서 만들어졌는가
사람은 누구나 자라면서 수많은 ‘기준’을 내면화한다. 착한 아이여야 한다, 성실해야 한다, 실수를 하면 안 된다, 남들과 비교해 뒤처지면 안 된다. 이런 기준은 대부분 어릴 때 부모나 교사, 사회적 기대를 통해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그 기준은 시간이 지나면서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 기준은 과연 지금의 나에게도 여전히 유효한가? 성인이 된 지금, 나는 나의 기준을 새로 설정하고 있는가? 아니면 과거에 주입된 기준을 무비판적으로 계속 적용하고 있는가?
철학자 미셸 푸코는 인간이 내면의 기준을 갖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규범에 의해 ‘자기를 감시하는 존재’가 된다고 말했다. 내가 스스로를 판단한다고 믿는 그 순간조차, 사실은 외부로부터 주어진 시선을 내면화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외부 기준에 지배당할 때 생기는 문제
외부의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기 시작하면, 나의 삶은 끊임없는 비교와 불안 속에 놓이게 된다. 타인의 성공, 타인의 기준, 사회적 성과 시스템 안에서 ‘나는 충분히 괜찮은가?’라는 질문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나의 고유한 감각과 방향성은 점점 흐려지고, 타인의 삶을 기준 삼아 나를 부정하게 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자기존중감은 무너진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받기 위해 해온 일’들만 남게 된다. 그 결과는 내면의 공허함, 감정의 둔화, 자기 불신이다. 외부 기준은 늘 변하고, 내가 통제할 수 없으며, 타인의 시선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절대 안정감을 줄 수 없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진정한 자기수용은 ‘조건 없는 긍정적 존중’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즉, 평가가 아닌 수용에서 출발할 때 비로소 자기다운 기준이 형성될 수 있다는 뜻이다.
내면의 척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진짜 자기존중은 외부로부터의 평가를 잘 견디는 능력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질문하고 답할 수 있는 내적 기준을 갖는 데서 시작된다. 그 기준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형성된다:
- 나는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 나는 어떤 선택을 할 때 후회하지 않는가?
- 나는 무엇을 할 때 자존감이 회복되는가?
이러한 질문은 자기이해의 도구다. 내가 어떤 순간에 만족감을 느끼고, 어떤 경험에서 성장을 느끼며, 어떤 행동이 나답다고 느끼는지를 반복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할 때, 내면의 기준은 조금씩 자라난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은 ‘스스로의 이성을 통해 도덕 법칙을 설정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했다. 즉, 타인의 판단이 아니라 자기 안의 이성적 판단에 따라 행동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내가 나를 평가하는 기준도 결국 나의 이성과 성찰을 통해 세워져야 한다.
자기존중은 실패와 모순 속에서도 작동해야 한다
진짜 자기존중은 내가 잘하고 있을 때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실패했을 때, 실망스러운 선택을 했을 때, 내 스스로가 부끄러울 때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나는 이런 모습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전부 나쁜 사람은 아니다.”
이런 판단은 자기연민과 연결된다.
자기연민(self-compassion)은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들거나, 핑계를 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나의 한계와 감정도 받아들이며, 나를 비난하지 않고 대화하는 자세다. 이 자세가 자기존중을 가능하게 한다.
불완전한 나, 실수하는 나, 변화 중인 나도 포함해서 자신을 수용할 수 있어야 진짜 평가 기준이 만들어진다. 왜냐하면 고정된 잣대가 아니라, 살아 있는 기준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교는 감각을 흐리게 한다
내가 나를 평가하는 순간, 가장 흔하게 빠지는 함정은 ‘비교’다. 비교는 나의 감각을 흐린다. 내가 정말로 괜찮다고 느꼈던 순간도, 누군가가 나보다 더 잘한 것 같다는 이유 하나로 무가치하게 느껴진다. 그러면 기준은 나의 경험이 아니라 타인의 성과가 된다.
문제는 비교가 끝이 없다는 점이다. 비교는 결핍을 끊임없이 확대시키고, 자존감을 점점 소모시킨다. 결국 ‘잘한다’는 느낌을 아무리 받아도 허무함만 남게 된다. 왜냐하면 비교는 승부가 아니라, 자기 포기이기 때문이다.
자기존중은 비교의 게임에서 빠져나올 수 있어야 한다. 비교는 감정의 소모이지만, 자기이해는 방향성을 제공한다.
“나는 이 선택이 맞다고 느낀다.”
이 문장이 말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자기기준을 갖춘 사람이다.
자기기준을 세우는 실천적 방법들
내 안의 기준을 정립하고, 타인의 잣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실천이 도움이 된다:
- 일기나 자기평가 기록
: 하루의 행동이나 선택에 대해 ‘외부의 시선’이 아니라 ‘내 느낌’을 기준으로 기록해본다. “나는 왜 이걸 했지?”, “이 선택은 어떤 감정에서 나왔지?” 같은 질문을 적어보자. - 비교하지 않는 연습
: SNS나 다른 사람의 성과를 보며 올라오는 감정을 인식하고, “지금 나는 누구의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고 있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 자기문장 만들기
: 자신을 정의하는 문장을 만들어보자. 예) “나는 성장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나는 실수해도 멈추지 않는다.” 이런 문장은 흔들릴 때 기준이 되어준다. - 가치 리스트 작성하기
: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5가지를 적고, 매일의 행동 중 그것과 연결되는 부분을 체크해보자. 이 연결이 자기기준을 현실화한다.
마무리
나는 나를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는가?
그 기준이 타인의 시선과 외부의 기대에서 비롯되었다면,
나는 끊임없이 흔들리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자기존중은
스스로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완벽할 때만 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수와 불완전함 속에서도 나를 지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는 내 안의 기준을 갖게 된다.
그 기준이 나를 살아 있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