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이해와 철학

나는 왜 반복되는 실수에 집착하는가 – 후회와 자기통찰의 철학

joy113 2025. 7. 7. 20:36

 

 

실수는 왜 반복되며, 우리는 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사람은 실수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러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 자신을 질책하고, 후회와 자책 속에 오랫동안 머무르는 경우에는 단순한 실수를 넘어서는 더 깊은 원인이 있다. 특히 마음속에 남은 실수는 단지 과거의 문제가 아니다. 반복되는 실수는 현재의 나를 형성하고, 미래의 나를 제한한다.

이 글은 단순히 ‘실수를 줄이는 방법’을 다루지 않는다. 실수가 반복되는 심리적, 철학적 구조를 탐구하며, 그 안에 숨은 자기이해의 실마리를 찾아보려 한다. 우리는 왜 실수에 집착하고, 왜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가?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자기 정체성, 감정의 작동 방식, 그리고 진짜 나를 이해하는 단서를 철학적으로 해석해본다.

후회와 자기통찰의 철학

 

 

 

기억은 실수를 다시 쓰게 만든다

실수는 단지 어떤 ‘행동의 실패’가 아니다. 대부분의 실수는 감정과 결합된 기억으로 저장된다. 예를 들어, 실수한 순간의 수치심, 부끄러움, 혹은 외면당한 감정은 단순히 기억에 머무르지 않고, 자기서사의 일부가 된다.
“나는 늘 중요한 순간에 실수하는 사람이다.”
“나는 결정 앞에서 늘 우유부단하다.”
이처럼 실수는 ‘기억’이 아니라 ‘정체성’으로 고착되며, 나의 행동 방식을 반복하게 만든다.

이 기억은 계속해서 나의 현재 행동을 조종한다. 유사한 상황이 닥쳤을 때, 과거의 실수에 대한 감정이 되살아나고, 두려움과 긴장이 높아진다. 그러면 실수할 확률도 다시 높아지고, 또 다시 자책이 쌓인다. 이런 구조는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감정과 신념이 결합된 패턴’이다.

 

 

후회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자기반성의 출발점이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은 끊임없이 과거를 해석하고 미래를 선택하는 존재라고 했다. 후회는 그 해석의 핵심이다. 우리가 후회한다는 것은 과거의 선택과 현재의 나 사이에 거리가 생겼다는 뜻이다. 그 거리는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반복되는 후회는 그 실수에 아직도 해답을 내리지 못했다는 표시다. “그때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은 내가 나 자신을 해명하고자 하는 내적 열망에서 비롯된다. 후회는 감정이면서도 동시에 ‘존재를 새롭게 구성하려는 시도’다. 그래서 후회를 단순한 감정으로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스스로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꺼내는 태도가 중요하다.

 

 

실수는 감정적 패턴에서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이 반복되는 실수를 ‘의지력 부족’의 문제로 여긴다. 하지만 실수의 뿌리는 감정적 반응에 있다. 우리는 특정한 감정 자극(불안, 긴장, 두려움)에 반복적으로 같은 반응을 보인다. 예를 들어, 중요한 발표 상황에서 긴장감이 올라가면 말이 빨라지고, 논리적 실수가 발생하며, 그로 인해 자책이 시작된다.

이 감정적 자동반응은 뇌의 ‘빠른 회로(fast path)’에서 작동하는 무의식적 시스템이다. 익숙한 감정 → 자동 반응 → 실수 → 자책 → 다시 익숙한 감정. 이 악순환은 반복적인 감정-신념 루프다. 단순히 ‘다음엔 조심하자’고 다짐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이유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루프를 인식하고,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의 반응을 ‘지각’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즉, 실수 자체보다 실수로 이어지기 직전의 감정 흐름에 주목하는 자기관찰이 필요하다.

 

 

실수에 집착하는 것은 자기서사를 다시 쓰고자 하는 마음이다

실수를 반복하고 거기에 집착하는 것은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내가 그 실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의 문제다. 우리는 실수를 반복적으로 떠올리면서, 그 장면을 다른 방식으로 마무리 짓고 싶어 한다. 이는 일종의 무의식적 재서사(re-narration)다.

예를 들어, 학창 시절 발표에서 말문이 막혔던 기억을 자꾸 떠올리는 사람은, 사실 그 장면을 다시 쓰고 싶은 것이다. “그때 한마디라도 잘했더라면…”이라는 상상이 멈추지 않는 이유는, 그 장면이 현재의 자존감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헤겔은 ‘우리는 과거를 완전히 소화하지 않으면, 현재를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실수에 대한 해석이 ‘나는 그런 사람이다’로 고정되면 우리는 성장하지 못한다. 반대로 그 실수를 통해 ‘나는 지금 다르게 선택할 수 있다’는 해석이 만들어질 때, 실수는 삶의 재료가 된다.


반복되는 실수는 신념을 바꾸기 전까지 계속된다

실수는 단지 감정적 흐름의 결과가 아니다. 그 밑에는 오랜 시간 형성된 ‘신념’이 존재한다.
“나는 실수를 하면 버림받는다.”
“나는 나서면 안 되는 사람이다.”
“나는 부족하니 조심해야 한다.”
이러한 신념은 대부분 어린 시절의 경험, 타인의 평가, 사회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다. 그리고 한 번 각인된 신념은 비슷한 상황에서 자동적으로 활성화된다.

신념은 생각보다 강력하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단지 감정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신념을 점검해야 한다. “나는 왜 실수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내가 지금 붙잡고 있는 신념은 나를 도와주는가, 아니면 제한하는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신념의 전환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실수는 나를 이해하는 가장 정직한 거울이다

실수를 통해 우리는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단지 행동의 실패가 아니라 ‘나의 선택 기준’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에 휘둘려,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는 그 자체가 정체성을 구성하는 재료다.

실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메타인지(meta-cognition)가 필요하다. 즉, ‘실수한 나’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나’를 제3자의 시선으로 관찰하고 해석하는 능력이다. 이때 실수는 자기비판의 근거가 아니라, 자기이해의 도구가 된다.

 

 

실수를 자기성장의 재료로 바꾸는 실천법

  1. 실수 일지 쓰기
    → 단순히 ‘무엇을 잘못했는가’가 아니라,
    ‘그때 어떤 감정이 있었고, 어떤 신념이 작동했는가’를 기록해본다.
  2. 감정 감지 훈련
    → 실수가 발생하기 직전의 몸 반응(숨 멎음, 근육 긴장, 말 막힘 등)을 관찰하는 훈련을 통해 감정의 루프를 조기에 끊어낸다.
  3. 신념 언어 바꾸기
    → “나는 원래 실수를 많이 해” 대신,
    “나는 실수를 인식하고 수정해나가는 중이야”로 언어를 바꾸면 사고 회로도 바뀐다.
  4. 작은 성공 기억 연결하기
    → 반복되는 실수 패턴과 상반되는 ‘성공한 경험’들을 되짚으며, 나의 기억 속 균형을 회복한다.
  5. 실수를 나눌 수 있는 관계 만들기
    → 실수를 숨기지 않고, 타인과 나눌 수 있는 관계 속에서 실수는 더 이상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경험이 된다.

 

 

마무리 

반복되는 실수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 기억, 신념의 구조적 패턴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실수를 통해 자신을 반복해서 정의하고,
그 실수에 집착함으로써 자신을 다시 쓰고자 한다.

실수는 수치가 아니라 성찰의 문이다.
그 문을 두드리는 순간, 실수는 통찰로 바뀐다.
실수는 나를 가장 정직하게 비추는 철학적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