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이해와 철학

나는 왜 변화가 두려운가 – 익숙함에 머무르는 심리와 존재의 용기

joy113 2025. 7. 2. 11:18

변화를 피하고 싶은 마음은 본능일까

우리는 삶에서 수많은 변화를 경험한다. 계절이 바뀌듯 환경이 바뀌고, 인간관계가 달라지며, 가치관과 감정도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변한다. 변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정작 우리는 변화의 순간마다 쉽게 멈추고 망설이게 된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지 않을까?”, “새로운 걸 시작했다가 실패하면 어쩌지?”
이런 생각은 단지 신중함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변화는 늘 모호하고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익숙한 것에 머물며 안정을 택하려는 심리를 갖는다.

하지만 그 익숙함 속에서 우리는 자주 답답함과 무력감을 느끼며,
‘무언가 바꿔야 한다’는 직감과 ‘지금이 편하다’는 본능 사이에서 갈등한다.
이 글에서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철학적 관점에서 탐구하고, 익숙함에 머무르는 심리적 이유, 그리고 존재의 용기란 무엇인지, 어떻게 변화의 주체로 다시 설 수 있을지를 함께 사유해본다.

 

 

익숙함에 머무르는 심리와 존재

 

 

익숙함에 머무르려는 마음 – 안전욕구의 그림자

인간은 기본적으로 안전을 추구하는 존재다.
마슬로우의 욕구 이론에서 보듯, ‘안전’은 생리적 욕구 다음으로 중요한 인간의 욕구로 꼽힌다. 안전은 단지 신체적 생존만이 아니라, 정신적 예측 가능성도 포함한다. 내가 예상할 수 있는 하루, 아는 사람들과의 관계, 익숙한 패턴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이러한 익숙함은 우리에게 위험 요소를 줄이고 불확실성을 피하게 해주는 심리적 방패처럼 작용한다.

문제는 이 익숙함이 너무 강해질 경우, 우리는 스스로를 ‘변화 불가능한 사람’으로 단정 짓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지겹고 무의미하다고 느끼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거니까’, ‘새로운 일을 배울 자신이 없으니까’라는 생각에 머무르는 사람은 변화의 가능성조차 닫아버린다.

또한 익숙한 관계에 머무르려는 심리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관계가 나를 지치게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니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가 두려우니까’라고 생각하며 관계를 유지한다.
이처럼 익숙함은 편안함을 주는 동시에, 성장을 막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철학자 니체는 “인간은 습관 속에서 살기를 원하며, 불확실성은 고통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어서 말한다. “새로운 길을 걷는 사람만이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다.”
익숙함은 안정을 주지만, 그 안정을 지나치게 붙들게 되면 진정한 자기실현의 가능성은 사라진다.

 

 

변화가 두려운 이유 – 실패, 평가, 자기확신의 부족

변화를 두려워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실패에 대한 공포’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결과보다, 예상할 수 없는 실패의 가능성을 훨씬 크게 두려워한다.
이 두려움은 흔히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표현된다.

  • “시작했다가 잘못되면 어쩌지?”
  •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 “지금보다 더 나빠지면 어떡하지?”

이러한 질문들은 사실 ‘객관적인 위험’이 아니라,
내면에 자리 잡은 불확실성과 자기불신에서 비롯된 주관적 해석이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변화가 두렵다기보다는,
그 변화 속에서의 나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또한 사회적 평가 역시 큰 부담이 된다.
새로운 것을 시도했을 때 ‘잘한다’는 평가를 받지 못할까 봐 걱정하고,
과정에서 부족해 보이거나 실패하는 모습을 보이면
자존감이 무너질 것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생각은 결국 변화가 아니라 자기 이미지의 붕괴를 두려워하는 심리다.

철학자 사르트르는 “자유는 선택의 부담과 함께 온다”고 했다.
변화는 곧 선택이며, 선택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동반한다.
그 책임이 두려울수록, 우리는 변화를 미루고 익숙함에 남아버리는 선택을 하게 된다.

하지만 중요한 건, 변화 자체보다도
그 변화 앞에서 내가 나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자기확신이 없다면, 어떤 변화든 위협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존재의 용기란 무엇인가 – 불확실성 속에서 나로 사는 힘

변화를 선택한다는 것은 불확실성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우리가 흔히 ‘용기’라고 부르는 감정은, 바로 이 불확실성과 불안을 안고도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다.
실존주의 철학자 틸리히는 이를 “존재의 용기(courage to be)”라고 불렀다.
그는 말한다. “존재의 용기란, 무(無)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려는 힘이다.”

변화를 선택하는 것은 자신이 익숙했던 정체성과 익숙한 패턴을 떠나는 일이기에
일종의 자기 상실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나’는 항상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움직임 속에서 발견된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실패할 수도 있는 자신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존재의 용기를 갖는다는 것은

  • 내가 불안해도 괜찮다는 걸 아는 것이고,
  •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며,
  • 과정 속에서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용기를 내어 한 걸음 나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되고,
새로운 경험 속에서 더 넓은 자아의 지평을 발견하게 된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자신에게 진실한 길을 선택하는 태도다.

 

 

변화를 위한 철학적 실천 – 작지만 진짜인 한 걸음부터

변화를 실현하려면 거창한 결심보다
작고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실천은 철학적 사고와 연결될 때 더 단단해진다.

첫 번째는 두려움을 말로 구체화하는 것이다.
漠然한 두려움은 우리를 마비시키지만,
그 두려움을 명확히 표현하면 객관적인 분석이 가능해진다.

  • “내가 두려운 건 실패가 아니라, 실패한 나를 보는 시선이다.”
  • “새로운 길을 걷고 싶지만, 준비가 안 됐다고 느껴질 뿐이다.”

이렇게 구체화된 두려움은 더 이상 ‘나를 지배하는 감정’이 아니라
내가 마주볼 수 있는 대상이 된다.

두 번째는 익숙한 틀을 조금씩 흔드는 실천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하던 행동을 바꿔보거나,
평소 하지 않던 선택을 해보는 것도 좋다.
예를 들어, 대중교통 대신 걸어서 가보기,
말을 아끼던 자리에서 한마디 더 꺼내보기,
기록을 남기지 않던 하루를 글로 적어보기 등
작지만 의도적인 변화는 나에게 ‘변화가 가능하다’는 경험을 준다.

세 번째는 자기기준을 설정하고 선언하기다.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스스로에게 말해보자.

  • 나는 완벽할 필요 없고, 진실하면 된다.
  • 나는 익숙함 속에 머무르기보다 성장의 방향을 선택한다.
  • 나는 실패보다 정체됨을 더 두려워한다.

이러한 기준은 변화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주는 ‘내면의 나침반’이 된다.

마지막으로, 변화는 때로 혼란스럽고 아프지만
그 변화 속에서만 진짜 나를 만나는 길이 열린다.
익숙함 속에 머무르는 삶은 평온하지만,
그 평온이 지루함과 무기력으로 변할 때
우리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제한하게 된다.

변화를 선택하는 삶은 항상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 용기는 매일의 작은 선택 속에서 길러지는 것이다.

 

 

마무리 요약

우리는 변화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 두려움은 불안한 미래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익숙함은 안정을 주지만, 그 안정을 고집하면
자기실현과 성장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변화를 선택하는 것은 단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더 진실하게 살아가려는 결단이다.

존재의 용기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힘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껴안고도 나로 살아가려는 태도다.
작은 실천, 자기기준의 선언, 두려움의 언어화는
우리를 변화의 길로 한 걸음씩 이끌어준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더 자기다운 삶을 만들어가게 된다.